나의 이야기(스토브·랜턴)

아르강 램프

멀티대왕 2013. 6. 30. 03:27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아르강 램프

  • 시대명

    로마시대에서 산업혁명까지

  • 연도

    1780년

  • 저자

    페이스 스미스

아르강이 석유 램프를 개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향유고래 사냥이 시작되다.

연료를 태우는 램프는 수백년 동안 큰 변화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780년에 스위스의 과학자 에메 아르강(1750~1803)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두 종(種)인 인간과 향유고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은 램프를 발명했다.

아르강은 연소를 위해 산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완 로렝 드 라부아지에 밑에서 화학을 배웠다. 아르강의 램프는 불꽃 내부로 보다 많은 양의 공기를 끌어들이기 위해 속이 빈 심지를 사용했으며 심지 둘레로 유리 실린더가 장착되어 있어 불꽃 외부에서 공기의 흐름을 증가시켰다. 아르강은 또한 불꽃의 크기를 줄이거나 늘리기 위해 심지를 내리거나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램프에서 나오는 빛의 양을 조절했다. 산소공급의 증가로 불꽃은 더 높은 온도에서 연소되어 빛의 양이 보다 많아졌다. 또한 기존의 석유 램프에 먼지가 끼게 하고 흐릿하게 만들었던 탄소분자들을 대부분 연소시켰다. 유리 실린더는 불꽃을 기류로부터 보호하여 빛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켰다.

아르강은 향유고래의 기름이 양초 불꽃의 열 배에 이르는 최고의 불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가 진 후에는 아르강 램프가 주된 광원이 되었기 때문에 고래 기름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1794년 프랑스 혁명 중에 라부아지에가 처형당하고 아르강의 특허가 박탈되면서 누구든지 아르강 램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르강은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기 위해 뼈와 관을 위한 목재, 묘지 식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803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1850년대에 등유가 등장하기 전까지 향유고래가 대량으로 학살되었다.

"아르강 램프에서 공기와 가스는 수많은 작은 구멍을 통해 접촉된다."
『기계공학지』, 18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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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기자님작성 글중에서-

 

불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등산의 기본 준비물이라고 하는 물, 불, 의복, 식량, 약품. 이중 불은 ‘fire’와 ‘lamp’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불을 피워 식량을 만들고, 체온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어둠을 밝혀 목표지점을 찾아가는 데에 이것은 꼭 필요한 장비다. 램프가 등산장비로 사용된 건 처음 등산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찾아볼 수 있다. 등산장비라기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불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램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문질러 물어본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TV에서 보듯, 옛사람들은 잘 타는 볏짚을 묶어 불을 붙이고 들고 다녔다. 아니면 형설지공이야기에서처럼 반딧불을 모아 주머니에 넣고 사용했을 것이다. 볏짚에 붙은 불은 램프라기보다 이미 인류가 50만년 전부터 사용해 온 횃불이었다. 인류는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못했고, 바람이 불면 쉽게 꺼져버리는 단점이 있는 횃불을 대체할 도구를 고안하기 이르렀다. 한자말 등(燈)이 기원전 4~5세기에 지은 사서삼경에도 나오니 이미 이 도구는 그보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음이 틀림없다. 초기 유대인, 그리스인, 로마인들은 석유를 이용한 기름등잔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후 동물(주로 고래)기름이나 식물의 열매에서 짜낸 기름을 이용한 램프들이 줄곧 사용되어 왔다.
1784년 스위스의 물리학자 에메 아르강은 새로운 인공 조명을 개발했다. 속이 빈 원통모양에 심지를 꼬아 넣은 이것은 그을음이 적으면서도 밝기를 높여 현대의 아웃도어용 램프와 가장 흡사한 구조로 되어있다. 파라핀유나 고래기름을 사용하고 둥근 유리로 불꽃을 감싼 이 램프는 불꽃의 깜빡거림을 감소시켜 밝고 지속시간이 길었다. 재미있는 건, 이런 형태의 램프를 두고 ‘아르강 램프’라 부르는 것 보다 당시엔 ‘켕케식 램프’로 불렸다는데, 아르강의 프랑스인 친구였던 켕케가 아이디어를 몰래 빼내어 양철공 랑쥐의 도움을 받아 램프를 완성한 것이다. 양철굴뚝까지 달려있던 이 램프는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보증까지 받아 ‘켕케식 램프’라는 이름을 얻었고, 코미디 프랑세즈(프랑스 국립극장)에서 출시해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램프에서 석탄가스가 연료로 사용된 것은 석유보다 이른 19세기 초반에 들어서였다. 1812년 런던에서 가스 사업이 시작되며, 곧 이 연료는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휴대용으로 만든 것이 지난 8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길거리에서나, 탄광에서 사용되었던 카바이트 등이다. 등의 내부에 연료인 카바이트를 넣고 물을 부으면 에틸렌 가스가 생겨 불꽃을 점화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석유가 연료로 사용된 건 1860년경부터다. 석유램프 또한 심지에 불을 붙이는 방식은 같았지만 그전보다 화력이 좋아 밝기도 3배가량 밝아지게 됐다.
1903년 미국 콜맨사에서는 가솔린을 연료로 한 램프를 처음 개발해냈다. 아크 램프(Arc lamp)라고 명명한 이 램프는 상온에서 증발이 쉬운 가솔린의 성질을 이용해 압력을 높인 후 기화하게 만들어 점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처음엔 지금과 같은 석면 심지가 아니라 특수한 전구를 사용했는데, 1916년 일명 ‘퀵 라이트’ 방식이라고 불린, 심지를 갈아 끼우는 형태의 모델을 개발하며 지금까지 대부분의 램프들은 이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램프는 처음엔 가정용이나 공업용으로 사용되었다가 야외용으로 변천해왔는데, 여기엔 근대들어 치열하게 전개됐던 두 차례 세계대전의 영향이 크다. 콜맨을 비롯해 옵티머스, 프리머스, 래디우스, 하사그, 페트로막스 등 지금까지도 명품으로 꼽히는 램프들은 모두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개량되고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하게 발전되어온 것들이다.
밝은 낮에는 활동을 하고 해가 저물면 당연히 모든 일과를 마쳤던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생활에 비해 산업혁명의 시작과 도시 산업화 속에 램프의 발달이 유독 가속화되었던 건 밝은 곳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말 전기와 이를 이용한 전등이 발명되며 도시에서는 기존의 연료를 이용한 램프들이 급속하게 자취를 감췄지만, 반대로 전기의 공급을 기대할 수 없었던 농촌에서는 기존 램프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휘황한 불빛은 이미 촌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등불의 연료로 사용되던 고래기름은 폭등하기에 이르는데, 멜빌의 소설 <모비딕>도 이 기름을 찾아 떠난 고래사냥꾼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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